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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목회에 성공했는가? (47)

[ 2018-02-28 09:02:24]

 
목회 참회록
최기채 목사
(광주동명교회 원로목사, 78회 총회장)

나는 병역비리자였다

얼마 전 서해안에서 발발한 천암함 사태가 있은 즉시 국가에서는 안보장관회의가 소집되었다. 그때 안보회의에 참석한 인사들의 절반 이상이 병력 미필자라는 보도가 있었다. 물론 처녀가 잉태하고도 핑계할 말이 있다는 속담과 같이 저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을 줄 안다. 그러나 그런 보도를 듣는 사람이나 금지옥엽 같은 자식을 전쟁터에서 잃은 부모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옛날부터 우리나라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사회라는 비난을 들어왔다. 즉 돈이 있는 사람은 죄를 짓고도 죄 없다는 판결이 내려지고 돈이 없는 사람은 죄가 있다고 판결이 내려진다는 것이다. 그와 같이 돈 있고 백(back) 있는 자의 자식은 군 면제가 되고 돈 없고 백없는 사람의 자식은 군대에 가서 죽는다는 것이다.

지난날에 우리나라의 대법원장을 역임하고 대통령 출마도 했던 어떤 이도 국방의 의무를 불이행하였을 뿐 아니라 여러 아들들 가운데 한 사람도 군에 입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인즉 체중 미달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변명을 들은 필자는 치를 떨면서 비난했다. 그리고 공사석에서나 지면을 통해서 적어도 국방의 신성한 의무를 감당한 자가 아니면 군통수권자의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역설해 왔다. 그리고 미국의 역대 대통령이나 국방장관도 자기의 귀한 아들을 한국전에 참전시켰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 가슴이 찡함을 느꼈다. 물론 필자는 병역 의무를 다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부끄러움이 없다고 자부해 왔다.
그러나 지난날을 곰곰이 돌아보니 나도 병역 비리자였음을 더 이상 숨길 수 없어 이 지면을 통해서라도 참회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나의 병역 비리 행위

1950
625일 새벽에 북한 공산군의 기습 남침으로 발발한 동족상잔의 포성과 폭탄이 터지는 굉음은 금수강산의 지축을 흔들었고, 전 국토를 초토화시켰다. 그리고 많은 국민과 외국군의 피가 온 나라를 흥건히 적셨다. 그러던 중 1953년에야 유엔군과 북한군 사이에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전선에서는 국지적으로 늘 전투 상황이 벌어지면서 어느 순간에 전면전이 재발할지 예측을 불허하는 상태였다. 그러던 중 1954년 봄에 필자에게 징집영장이 발부되었다. 그 당시에는 군에 입대하면 거의 죽어서 돌아오거나 제대는 꿈도 꿀 수 없이 장기 복무를 해야만 했다.

필자는 갸륵하신 어머니의 통곡 소리를 들으며 아버지께서 몸져 누우시는 모습을 뒤로하고 군산 보충대에 입영했다. 전국에서 소집되어 온 장병의 무리에 떠밀려 실오라기도 걸치지 않는 벌거숭이로 신체검사실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건강 판정을 받으면 논산훈련소로 들어가고 훈련소에서 8주 내지 16주간 훈련을 이수하여 합격한 자는 각 부대로 배속을 받는다.

그런데 군산보충대에는 필자의 친형님이 일등 중사이자 주조(매점)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며칠 동안 머물면서 엑스레이로 가슴 사진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찍어댔다.

종합검진을 마친 다음 필자의 가슴 사진을 보여주는데 폐가 완전히 다 망가져 있었고 결핵 3기 환자로 판정을 받았다. 필자뿐 아니라 등에 나병이라고 써붙이고 다니는 징병자도 왜 그렇게 많은지 이상했다. 그때에 형님이 나타나서 의무실의 사병들과 귓속말을 주고받은 다음 너무 염려하지 말고 집에 가서 편히 쉬면서 치료하면 좋아질 것이라고 위로해 주었다. 필자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군에 입대하여 전사하거나 죽도록 고생하는 것보다 부모님 슬하에서 죽는 편이 더 낫겠다 싶어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나중에 들으니 아버지와 형님의 합의하에 당시 3만 원을 뇌물로 주고 결핵 3기인 징집자의 가슴 사진과 필자의 사진을 바꿔치기하여 그 청년은 입대하고 필자는 귀가 조치되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는 신앙생활도 하지 않고 온갖 파렴치한 행동을 일삼던 때인지라 형님의 배경이 얼마나 든든하고 고맙고 고소했던지 정말 날뛰고 다녔었다.

그러나 실낱 같은 양심이 나 자신을 옭아매며 괴롭혔다. 결핵 3기로 다 죽어가던 청년이 혹독한 군율과 배고픔과 고된 훈련을 받다가 각혈을 하며 죽어가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참으로 양심에 가책이 되어 이 순간에도 사죄를 구하고 싶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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