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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목회에 성공했는가? (46)

[ 2018-01-22 14:14:55]

 
목회 참회록
 
최기채 목사
(광주동명교회 원로목사, 78회 총회장)
3) 철없는 경쟁의식으로 헌금을 강조했다.
필자의 목회 초기에는 같은 지역에 교세가 비슷한 두세 교회가 있었다. 그래서 어떤 모임에서나 '금년의 결산은 예산 대비 몇 퍼센트나 수입이 되었으며 새해의 예산은 얼마나 세웠습니까?' 하는 질문은 단골 메뉴로 화제에 올랐다. 그런데 성도의 회집 수는 비슷한데 예산이 턱없이 적다든지 결산이 미달되었을 때는 너무 자존심이 상하고 죽고만 싶었다. 그러기에 철없는 젊은 목사들의 자존심 대결로 말미암아 등뼈가 부러지는 것은 만만한 성도들뿐이었다. 지금에 와서 깊이 반성하는 것은, 한 영혼이라도 더 건져내고 상한 심령을 싸매 주고 품어 주고 위로하는 양 무리에게 좋은 꼴을 먹여서 잘 길러 내는 것이 목회자의 본분인데 엉뚱하게 헌금 타령만 했었다 싶다.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심히 아파 온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목회자의 하는 일은 양 무리를 치는 것이 기본적인 사명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양 무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서 잘 먹여 놓으면 자동적으로 풍성한 젖이 나오기 마련인데, 오히려 먹이지는 못하면서 양들을 들볶고 때리면서 흩어져 길 잃은 양을 찾지도 아니하고 갈 테면 가라는 식으로 학대했던 이 무서운 죄를 생각하면 양 무리의 주인이신 목자장께 황송할 뿐이다.
젊은 패기와 오기만 창창 들어서 불도저처럼 밀어붙여 목적을 달성하고 그것이 성공인 양 자랑하고 뽐내고 어깨를 펴고 다닐 때에 성령께서 얼마나 근심하셨을까 생각하니 죄스럽기 한이 없다.

4)
성경이 약속한 축복을 받게 하려는 강렬한 욕망 때문이었다.
오늘날 성경신학을 전공했다는 신학자들 가운데는 십일조는 율법주의의 산물이요, 복음시대에는 10분의 10이 다 하나님의 것이니 십일조를 강조하는 것은 무식한 목사들이 주장하는 억지라고 악평한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도 십일조를 바쳐야 한다는 것은 묵시적으로 인정하셨고(23:23), 모든 소득의 십분의 일은 다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라고 규정하셨다(27:30). 그뿐 아니라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3:10)고 말씀하셨다.
뿐만 아니라 철저한 복음주의 신학자 바울은 '헌금은 축복의 씨'라고 규정하고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후 9:6)고 했다. 그러기에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고 했다. 그러므로 헌금은 아무리 강조해도 남음이 없을 것이다. 다만 성도들로 하여금 헌금은 억지로 하지 않고 즐거움으로 하게 만드는 것이 목회자의 몫이 된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5)
기복신앙에 입각하여 헌금을 강조했던 것이 후회된다.
물론 옛날 일이지만 7-8세 때부터 십일조를 바치기 시작해서 세계적인 부호가 되고 많은 예배당과 많은 학교를 설립하여 복음 전파에 기여했던 미국의 록펠러나 워너메이커의 얘기를 수없이 말해 준 것 같다. 그뿐 아니라 필자의 목회 현장에서 수없이 목격했고, 또 전국적으로 복받은 성도들을 친히 봐왔다. 그러기에 보고 느끼고 만져 본 비밀을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어떤 면에서는 무식한 것 같고, 기복신앙을 심어 준 것 같으나 필자가 친히 체험했고 또 성도들의 체험을 통하여 알게 된 축복의 원리를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기에 믿음으로 아벨이 자기의 친형인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던 것처럼 헌금도 다른 성도보다 질적으로 더 나은 헌금으로, 양적으로 더 많이 바치도록 격려하고 권고했었다.

요즘에야 서울에 대형 교회가 많이 생겼고 시골에도 대형 교회가 생겨나 예산도 많이 세우고 결산도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시골에서 가난한 성도들이 눈물 적신 헌금을 강조해서 나온 재정을 정치자금으로 사용했거나 같은 레벨의 교회보다 생활비를 더 많이 받지 않았음을 부끄럽지 않게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성경이 말씀한 대로 겉치레든지 무슨 방도로 하든지 그리스도 전파를 위해 한 일은 기뻐할 일이다(1:15-18).
그러나 지나치게 헌금을 강조하여 가난한 양 무리에게 상처가 되었다면 떳떳하지 못할 뿐 아니라 주께서 피 흘려 사신 교회와 복음 정신에 맞지 않는 것 같아 지난날의 잘못된 점을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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