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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영 목사의 선교사역 연구 ①

[ 2016-03-14 13:20:38]

 

< 김남식 박사>

서론

 

차 례

 

서론

1. 선교역사의 연구 / 2. 이대영 연구의 필요성

 

Ⅰ. 한국교회와 산동성 선교

1. 산동 선교의 준비 / 2. 산동 선교의 위기 / 3. 산동 선교의 확산

 

Ⅱ. 이대영의 산동 선교사역

1. 선교사로의 헌신 / 2. 선교사역의 전개 / 3. 선교사역의 역경

 

Ⅲ. 이대영의 선교사역의 분석

1. 선교전략 / 2. 선교실천 / 3. 선교행정

 

결론

1. 중국공산화로 인한 본국에서의 사역 / 2. 귀국 후의 사역

 

 

서론

 

이대영(李大榮, 1887. 4. 23-1968. 11. 2) 목사는 한국교회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의 사역에 비하여 그에 대한 조명은 극히 미미하였는데, 이것은 후학들과 후손들의 불찰이다. 우리는 그의 삶과 사역에 대한 다각적 조명과 평가를 하여 󰡐계승 보완󰡑의 아름다움을 이어가야 한다.

 

1. 선교역사의 연구

 

역사란 기록을 통하여 보존되고 전승된다. 그러므로 선교 역사의 분야에서도 보다 구체적 연구가 필요하다. 연구 방향은 여러 가지이지만 인물중심의 연구도 우리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영역이다.

선교역사 연구를 통해 지난날의 선교 자취를 재검토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선교 전략을 정립할 수 있기에 치밀한 접근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2. 이대영 연구의 필요성

 

지금까지 이대영 연구는 극히 미미하다. 김교철의 연구와 이교남의 연구가 우리들이 접할 수 있는 제한된 자료이다. 그 외 약간의 논문들이 있으나 이대영은 널리 연구되지 못하고 있다.

이대영 연구의 필요성은 여러 가지이다. 첫째, 초기 중국 선교사 가운데 33년이란 최장기 사역을 감당한 선교사이다. 둘째, 중국 선교의 상황화를 위해 헌신한 선교사이다. 셋째, 선교사역에 네비우스 방법을 적용시킨 선교사이다. 넷째, 전도 집회와 부흥사경회를 통해 현지인의 영적 각성을 도모한 선교사이다.

본 연구는 문헌연구를 중심으로 하고, 면접과 현지 방문을 병행한다. 또 본 연구는 이대영의 선교사역을 중점으로 다루고 목회 사역에 대해서는 따로 다룬다.

 

Ⅰ. 한국교회와 산동성 선교

 

한국 교회 특히 한국장로교회는 1884년 선교사의 입국 이후 1907년 독노회를 조직하고 선교하는 교회로 성장하였다.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를 설립한 후 해외선교를 시도하였다.

 

1. 산동 선교의 준비

 

한국장로교회는 해외선교를 위해 사전 준비 작업을 하였다. 주한 미국 선교사들과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은 산동선교의 의견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들은 해외선교의 공론화와 총회의 결의, 선교지 선정, 선교사 선발과 선교지 국가와의 관계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1) 해외선교의 공론화와 총회 결의

중국으로의 선교사 파송 계획은 여러 해 동안 준비되고 청원되었다. 독노회 시절부터 설립 총회까지 6년 동안 전도국 위원장이었고 창립총회에서 부회장으로 선출된 길선주 목사는 오래 전부터 중국 선교의 비전을 국내외의 애국지사들과 함께 나누고 교회의 지도자들과 여러 차례 의논을 거쳐 주한 선교사회의 동의를 이끌어 냈다. 중국 선교는 1912년 7월 1일 재령읍 남산현 예배당에서 회집된 제2회 황해도 노회에서 다음과 같은 김익두 목사의 보고로 공식화되어 총회에 헌의되었다.

 

'전도위원 김익두 씨가 보고하기를 우리 노회의 은혜 받은 것과 이 세상 어두운 것과 예수께서 마지막 명령하신 것을 생각하니, 외국전도 아니할 수 없은즉 총회에 헌의하여 청국 중에 맛틀 디경을 엇어가지고 복음전파하기를 청원하되 전도하는데 쓸 자본은 임의 총회 전도국으로 보내는 연보와 이후 본 노회 디경내에 감사연보로 해야 그 전도하는 총회 전도국에서 주장하여 주시기를 청원하자고 하며 회중이 차용하기로 동의하여 가로결정하고 …'

 

그리하여 창립총회 때 전도국은 1년 중에 한 주일은 택정하여 감사일 겸 선교주일로 지킬 것과 총회 창립 때부터 지나(支那) 등지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선교를 시작하기로 청원했다. 창립총회는 합심하여 기도하고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 복음 전파라는 것을 산동선교의 결의로 증명했다.

이처럼 산동선교는 해외선교의 비전을 가진 지도자들의 사전 준비를 거쳐 성령의 역사로 창립총회에서 결의되었고, 첫 선교사로 재령의 박태로 목사를 임명했다. 그리고 총회 차원에서 중국 내 지역을 사전 조사하도록 지시했다.

 

(2) 선교지 선정을 위한 사전 조사

선교지 선정을 위한 사전 조사에는 미 북장로교 선교사들의 역할이 컸다. 그들은 한국 교회가 해외선교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안내했다. 평양에서 활동한 선교사인 윌리암 블에어(William N. Blair)는 KMF의 '한국 장로교회의 선교 사역'이라는 글에 재령에서 사역하던 윌리엄 헌트(W. B. Hunt) 선교사가 직접 선교 가능 지역을 여러 차례 조사하고 산동성의 미 북장로교 선교사들과도 협의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중국에 선교사를 파송하자는 안이 여러 해 동안 한국 교회에 청원되었다. 3년 전 총회는 선교부에 중국에서 적당한 선교지를 찾을 수 있는지 가능성을 조사하도록 지시하였다. 선교부원인 헌트 목사는 가능한 한 여러 선교지를 직접 탐방하고 중국 성도들과 미국 선교사들과 협의하기 위해서 또 한 차례 선교 현지를 폭넓게 답사하였다. 그는 한국 교회가 중국에 선교하고자 하는 노력을 중국 교회가 환영한다는 보고를 가지고 돌아왔다.'

 

총회는 1913년 5월 5일 황해도 재령의 박태로 목사와 평안도 안주교회 김찬성 목사를 선교지 답사 및 중국 교회와 교섭을 위하여 총회 파견위원으로 산동성에 보냈다. 그들은 도착한 때는 마침 화북 장로교대회가 열리던 때였다. 그들은 연태 남서쪽 위치한 래양에 선교부를 설치하라는 조언을 받고 돌아와 래양이 선교지로 적합할 것 같다고 본국 총회에 보고했다.

그러나 중화장로회노회(中華長老會老會)에 한국 교회의 선교지 문제가 상정되어 결정되기까지는 하나님의 섭리적 간섭이 있었다.

20세기 초의 선교는 정치 문화 경제적인 배경으로 수행된 시기였다. 그런데 성령께서 선교지 결정에까지 간섭하시어 이러한 선교적 통념을 깨뜨리셨다. 한국 교회는 비록 중국 교회에 비해 어리고 규모가 작았지만 선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간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13년 9월 7일 제2회 총회가 경성 소안동예배당에서 회집되어 해양현과 래양현 등지를 전도구역으로 정하고, 박태로, 사병순, 김영훈 세 분의 목사를 중화민국 산동성 래양현 선교사로 파송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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