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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선교 보고서 ①

[ 2013-11-08 11:37:06]

 

우리를 사용하여 일하신 주님의 사역

서공섭․이미자 선교사(2013년 10월 6일)

 

1. 주님께서 소원하신 사역

 

2005년 1월부터 2013년 10월까지 9년간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선교 발자취를 되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부족하고 연약한 우리 부부를 사용하여 주님께서 이루신 일들을 생각해 보니 '오직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나는 갈길 모르니 주여 인도하소서

어디가야 좋을지 나를 인도하소서

어찌해야 좋을지 나를 가르치소서'(통일찬송가 421장)

1969년 한 해 동안 가족이 다 함께 가정예배를 드릴 때마다 이 찬송을 부르며 앞으로 어떤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지를 놓고 간구했을 때, 하나님의 강권적인 인도하심을 따라서, 필자는 학교에 교사직 사직서를 제출하고선 생소한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네 한 가운데 있는 콩밭 모퉁이 땅을 빌려서 군용천막을 치고 양문교회의 첫 예배를 드린 날이 1970년 10월 첫 주일이었습니다.

원우연 전도사 부부와 필자 부부, 이들 4명이 양문교회의 개척 멤버인 셈입니다. 그 당시 원우연 전도사는 1970년 3월에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의 전신인 총회신학교 신학연구원 1학년에 입학하여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필자는 양문교회 1호 서리집사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리고 개척교회의 주일학교 부장, 재정담당 집사, 교회 건축위원장을 동시에 맡게 되었습니다.

동네 한가운데 공터에다 천막을 쳐 놓으니, 낮에는 학교 갔다 온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고, 밤에는 집 없는 걸인들의 잠자리가 되어서, 아이들이 대․소변을 아무렇게나 배설하고, 밤의 추위를 피하기 위해 불은 피우면 화재가 발생할 위험이 높았기 때문에, 낮에는 우리집 아이들(정숙, 정근, 정경, 정신, 정혜)이 천막을 지키고, 밤에는 필자가 직장에 갔다 와서 천막교회를 지켜야 했습니다. 밤의 추위 때문에 천막 안에 비닐 장판을 깔고 잠자리에 들면, 동네 들쥐들이 장판 밑 따뜻한 곳을 몰려와서 돌아누울 때마다 '찍! 찍!' 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3년을 지냈습니다.

천막 속에서의 예배가 얼마나 어려운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고, 바람에 펄럭이고, 눈에 찢겨져 내려앉고,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관할 구청의 무허가 건물 철거반들이 들이닥쳐 천막을 철거하면 다시 세우고, 이렇게 반복하기를 7번, 드디어 8번째 천막을 세워놓고는, 40평의 대지를 빚을 내어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20평 대지에 시멘트 블록 벽을 세우고 스레트 지붕만을 얹은 채, 벽도 바르지 못하고 흙바닥 위에서 입당예배를 드리면서 천국이 이렇게 좋을까 하며 하나님께 눈물로 감사를 드린 것이 기억납니다.

필자는 집사로 봉사한 지 3년만에 교회당을 세운 후 새 성전에 입당하면서 양문교회 1호 장로가 되었으나, 여전히 교회 건축위원장으로서 교회당을 경수 산업도로변으로 이전하여 신축공사를 하면서 그후 10년 동안 더 넓은 대지 마련과 증축공사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원우연 목사님이 입학원서를 사와서 권유함으로 필자는 총신신대원에 입학하여 졸업하고 1983년 10월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자마자, 그해 12월에 원 목사님이 미국 나성 양문교회를 설립하여 세계 선교의 비전을 품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바람에, 원우연 목사님을 이어서 필자가 양문교회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게 되었습니다.

필자는 양문교회에서 1호 집사로 3년, 1호 장로로 10년, 2대 목사로 21년 합계 34년을 섬기게 되었는데, 목회 은퇴를 앞두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남다른 큰 은혜와 사랑을 받았으니 감사하면서 원로목사로서 양문교회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서 기도하며 교회를 섬길 것인가? 아니면 중국에 가서 선교하며 여생을 보낼 것인가? 두 가지 문제를 놓고 기도하며 하나님이 뜻을 찾고 있을 때, 필자와 함께 중국 선교와 장애인 선교를 위해 동역하던 김동식 목사님이 중국에서 사역하시다가 북한으로 납치되어 가서 생사도 모르는 입장이었고, 중국 선교에 헌신한다는 것은 곧 북한 선교와 직결되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던 차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 2년 앞서 가 있던 아들 정근 목사가 한 번 방문해달라는 연락을 받고, 은퇴를 몇 달 앞둔 2004년도에 아들 가족이 사는 곳의 형편도 돌아볼 겸 해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가서보니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잘 사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빈부 격차가 너무나 커서 마치 천국과 지옥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은퇴 후 선교의 현장을 찾는 필자를 하나님께서는 남아공 더반으로 인도하셨고, 더반에서 선교하고 있는 총신 후배인 강병훈 선교사를 만나게 해 주셨고, 강병훈 선교사는 우리에게 콰사자 반투 지역의 선교현장에 데리고 가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그 지역의 선교 현장을 보여주었습니다. 필자에게 그 선교 현장은 한 마디로 도전 그 자체였습니다.

독일의 젊은 선교사 7명이 처음에 콰사자 반투 지역에 와서 함께 사역을 시작하였는데 각자의 재능대로 열심히 선교한 결과 지금은 약 100여 명의 선교사들이 같은 지역에서 유치원부터 초, 중, 고, 대학까지 설립하여 교육 선교에 매진하고 있는 모습과, 병원, 농장, 인쇄소, 가구공장, 제빵공장, 방송국, 생수공장까지 무려 27가지의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선교 사역 현장을 둘러본 후, 그곳에 머물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내 마음속에 어디서 어떻게 선교해야 할 것인가를 말씀해 주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의 남단 남아공에 와서 선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때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렇다면 '이곳에 함께한 사람들이 다 선교 동역자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니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더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때 동행한 이들은 우리 부부와 아들 가족 정근, 원옥, 사무엘, 사라, 리브가, 어머니 맹 여사와 이기면 선교사, 윤은선 유치원 원장, 사위 김구 목사, 손자 수교, 그리고 안내해 준 강병훈 목사였습니다. 내 눈앞에는 새로운 시야가 펼쳐졌고, 만나는 사람마다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필자는 은퇴 후 가서 일해야 할 선교지를 남아공으로 결정하고 보니, 이전에 바라보던 아프리카가 아닌 새로운 아프리카로 필자에게 다가왔고 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고 역사하실지 궁금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필자의 인생의 황금기를, 필자의 기도와 눈물과 소유를 다 쏟아서 사랑으로 섬겼던 양문교회를 진정 사랑하고 부흥하기를 바란다면, 필자의 소식도 들리지 않는 먼 곳으로 떠나는 것이 좋은 것임을 평소에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주변의 교회들을 볼 때, 원로목사가 가난과 싸워가며 눈물과 기도로 세운 교회와 성도를 떠나지 못하고 머물러 있으니, 성도들이 지금까지 사랑하고 섬기며 말씀으로 양육하던 원로목사와 후임목사님 사이에 방황하는 사이, 교회 내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는 것을 보고 들으면서, 인간의 정으로서는 도저히 떠날 수가 없으나, 하나님의 교회요, 교회의 머리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고 계시니, 모든 것을 후임목사님께 맡기고, 필자는 소식도 들리지 않는 먼 곳으로 사라짐으로 후임목사님에게로 성도들의 마음이 모이고, 후임목사가 목회하기에 평안하게 해 드리는 것이 진정 필자가 사랑했던 양문교회를 사랑하는 길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차마 떠날 수 없는 아픈 마음을 안고 34년간 정들었던 교회와 성도를 떠나 남아공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필자의 마음속에는 '이제 나는 쇠하여야 하고 후임목사님은 흥하여야' 하기 때문에, 1년에 한 번씩만 와서 선교 보고를 하리라 다짐하며 남아공으로 떠났습니다.

양문교회에 필자가 짐이 되지 않기를 바랐으나, 마음과는 달리 생활하는 데 너무 어려워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까봐 먹고 살 수만 있기를 기도했는데, 교회에서 매월 선교비를 보내주어서 평안히 선교할 수 있게 해주고, 매년 10월 첫째 주 양문교회 설립주일에 강단에서 설교할 수 있도록 초청해줄 뿐만 아니라 왕복 여비와 체재비까지 제공하므로 덕분에 해마다 한 차례씩 종합건강검진도 하고 선교에 필요한 자료들을 준비하며, 성도들과 사랑과 교제를 나룰 수 있게 해 주어서 필자의 부부는 담임목사님과 당회, 그리고 온 성도님들께 늘 감사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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