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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김남식 박사의 한국장로교 통사(通史) 12

[ 2013-04-15 16:59:44]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났다. 새로운 서양문물에 눈을 뜬 개화파들은 나라의 개혁을 위해 정권을 잡으려 하였다. 김옥균․박영효․서광범․홍영식 등의 개화파는 우정국 낙성 피로연을 계기로 명성황후 일족을 중심한 보수파들을 제거하려는 쿠데타를 꾸몄다.

개화파가 저격하려는 대상 중 민영익이 핵심적 인물이었다. 그는 보수파 가운데서 가장 머리가 우수하고, 새로운 서양 문물을 접한 바 있는 사람이었다. 민영익도 해외 여러 나라를 순방하였기에 개화파들과 동지적 입장에 섰다. 그러나 자신의 가문이 가지는 권위 때문에 개화파들과 결별하고 말았다.

개화당의 쿠데타는 3일 천하(三日天下)로 끝났다. 중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하기 위하여 당시 장안의 명의 14명이 동원되었으나 민영익의 출혈을 막을 수가 없어 거의 죽게 되었을 때 묄렌돌프의 주선으로 알렌이 3개월간 정성껏 치료하여 완쾌시켰다. 민영익은 너무나 고마워 1885년 1월 27일에 감사의 편지와 감사금 10만 냥을 보내왔다. 알렌의 의술이 용하다는 소문이 났고, 이를 입증한 조정에서는 그를 고종의 어의(御醫)로 임명하였다. 그후 일본과 청국 군대 사이의 충돌 사건에도 알렌은 정성으로 치료하였다.

알렌의 의료 행위를 통하여 한국 조정에서는 미국인들에 대하여 호의를 가지게 되었고, 선교사들에게도 큰 박해를 가하지 않았다. 갑신정변을 계기로 한국 정부와 가까이할 수 있었던 알렌은 한국 선교의 정지 작업을 하게 되었으니 이는 병원 설립을 통해 백성들 속에 그리스도를 심으려는 위대한 사역이었다. 알렌은 세례 요한과 같은 사역을 감당하였다. 한국 선교의 방해 요소들을 제거하므로 다음에 오는 선교사들이 활기 있게 일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갑신정변에서 민영익을 치료한 알렌은 궁중의 호의를 받게 되고, 고종의 어의로 임명되었다. 알렌은 왕궁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진료하기 위하여 의료기관의 설립을 계획하게 되었다. 알렌의 치료법이 신기하다는 소문이 나자 많은 환자들이 알렌의 집으로 모여들었다. 최신 의학의 혜택을 받지 못한 당시 사람들에게 알렌의 치료법은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알렌은 1885년 1월 22일 미국 대리공사 폴크(Foulk)에게 병원을 세울 계획을 말했고, 그의 주선에 의해 한국 정부는 병원 설립을 허가하여 줄 뿐 아니라 1885년 2월에 갑신정변에 살해 당한 홍영식의 집을 병원 자리로 내어주고, 병원의 이름을 광혜원(廣惠院)이라고 지어주었다.

1886년 6월에 헤론 의사가 와서 알렌을 도왔다. 1887년에는 알렌이 의료선교의 일선에서 잠시 은퇴하여 위싱턴 주재 한국공사관 서기관으로서 한국의 외교관으로 일을 하였다. 미국인이 한국 공사관의 관리가 된다는 것은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매우 신기한 일이기도 하였다. 1889년에는 의료선교에 다시 복귀하여 병원 경영의 책임을 지고, 한국인들을 진료하는 데 최선을 다하였다.

알렌은 외교관으로서도 활동하였다. 1895년 8월에 서울 주재 미국공사관 관리가 되었고, 1897년에는 당시 공사인 씰이 귀국한 동안 대리공사와 총영사에 임명되었고, 1901년에는 특명전권대사가 되었다.

알렌은 미국의 국익(國益)을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한국을 위하여 매우 협조적이었고, 외세의 압력으로 고통당하는 한국의 자주 독립 유지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노력하였다. 이와 같은 공로로 국왕으로부터 세 번이나 공로훈장을 받았다.

알렌은 궁중의 측근으로서 한국을 도왔다. 특히 188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서 그의 역할을 두드러졌다. 일본의 깡패들이 왕궁에 침입하여 명성황후를 살해하고, 그의 시체를 불살라버린 사건이 일어났다. 다음날 대리공사 알렌은 웨베르(Waeber)와 같이 왕궁으로 급히 달려갔다. 황후의 죽음을 본 고종은 공포에 휩싸여서 어쩔줄 몰랐다. 고종은 '아무도 날 도와줄 이 없는고. 황후의 죽음을 누가 갚아주기만 한다면 머리를 잘라 신을 꼬아주겠다.'고 호소하였다. <계속>

김남식박사(한국장로교역사학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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