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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식 박사의 한국장로교 통사(通史) 11

[ 2013-03-11 17:50:36]

 

미국 장로교 선교부의 실행이사 중에 한 사람인 엘린우드(F.N. Ellinwood) 박사 같은 이는 즉각적 선교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선교부 총무는 한국 선교는 아직 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장문의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선교부 총무의 성명서를 읽은 선교부 이사 중 한 사람이며 프레드릭 마르콴드(Frederick Marquand) 재단의 중역인 데이비드 맥윌리암스(David. W. McWilliams)는 자기 교회 목사인 엘린우드 박사에게 선교부 총무의 성명서에 대하여 문의하다가 엘린우드의 즉각 선교 주장에 감동을 받고 1884년 2월과 4월 그리고 5월 석달 동안에 6,000달러를 선교부에 헌금하면서 한국 선교에 사용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다른 곳에서도 한국 선교를 위한 헌금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잃어버렸던 새로운 땅을 찾아나서려는 선교의 열의는 곳곳에서 일기 시작하였다. 결국 선교부에서는 한국 선교를 결정하였다.

한국 선교를 위하여 유능한 젊은 의사인 헤론(John H. Heron)을 1884년 봄에 한국 선교사로 임명하고 당분간 일본에 머물며 어학을 배우고 때를 기다리게 하였다. 순교의 피로 물들인 한국 강산에 서서히 선교의 봄이 찾아오기 시작하였으니 '마케도니아인의 손짓'에 응답하는 신앙의 열매가 도처에서 맺히게 된 것이다.

 

3. 알렌의 입국

 

1884년 봄에 헤론(John H. Heron) 의사를 한국 선교사로 임명하고, 일본에 거주하면서 한국어를 배우게 하였다. 이러는 중에 중국에 의료선교사로 파송받았으나 적당한 임지가 없던 알렌(Horace N. Allen)이 한국에 먼저 오게 되었다. 알렌은 한국 선교의 '세례 요한적 사명'을 감당했다. 그는 선교 영역의 확장을 위해 노력하였고, 나중에는 미국 외교관으로서 활동하게 되었다.

알렌은 1858년 4월 23일에 미국 오하이오주 델라웨이에서 태어났고, 오하이오 웨슬리안 대학과 오하이오주 옥스포드 마이아미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883년 10월 11일에 의료선교사로서 중국 상하이에 도착하였다. 그는 상하이와 난징(南京) 등지로 순회하며 자신이 일하여야 할 곳을 찾았으나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였다. 그는 상하이에 있던 친구 헨더슨(Henderson) 박사의 권유로 한국에 갈 것을 결심하였다. 알렌은 한국 정세에 대해 여러 가지 일들을 들은 바 있기에 조심스럽게 행동하였다.

알렌은 당시 한국 조정의 외무아문 협판인 묄렌돌프(P. G. Von Mo>llendorf) 밑에서 세관 업무를 보고 있던 하스(Joseph Hass)에게 1884년 6월 6일자로 한국에 주재하는 외국인들에게 의사가 필요한가고 문의하고 그 결과를 6월 8일에 선교본부에 알리면서 자신의 임지를 한국으로 바꾸어 주기를 요청했다. 선교본부에서는 알렌의 요청을 6월 22일자로 허락하였다.

그리하여 알렌은 1884년 9월 14일 상하이를 떠나 9월 20일에 제물포에 상륙하였고, 22일에 서울에 들어왔다. 그는 선교사의 신분을 숨기고 의사의 자격으로 입국하였다. 그 당시는 선교사들이 마음대로 입국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주한 미국영사관에서 의사로 무보수 봉사를 하게 되었다. 계속하여 영국, 청국, 일본영사관의 공의로 일했고 세관 의사로도 일하였다.

비록 의사로 활동하였으나 그의 근본 입국 목적이 선교에 있기에 자신의 어학 선생인 이하영(李夏榮)에게 전도하였고, 이하영은 훗날 워싱턴 주재 한국대리공사로 일하였다. 그러자 알렌이 선교사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였고, 고종은 미국 공사 푸트(Foote)를 소환하여 진위를 알아보려 했으나 푸트 공사가 알렌은 미국 영사관을 위시한 각국 공사관의 공의라고 강조하여 이 문제를 무마하였다.

이하영의 뒤를 이어 알렌의 어학 선생이 된 사람은 노도사이다. 김양선 교수에 의하면 노도사의 본명은 노춘경(盧春京)이라 한다(金良善, 「韓國基督敎史硏究」, p.68). 노춘경은 기독교를 가르치는 한문으로 된 책에서 처음으로 기독교를 알게 되고 기독교를 가장 빨리 아는 길은 선교사와 접촉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헤론 박사의 어학 선생이 되었고, 이어 알렌 박사의 어학 선생이 되었다.

그는 알렌 박사의 책상 위에 있는 한문으로 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을 몰래 가져다가 밤새도록 읽었다고 한다. 당시 사정은 성경을 소지하다가 잡히면 참수를 당하는 형편이었으나 노도사는 이것에 굴하지 아니하고 성경을 읽었다. 그는 첫 세례교인이 되었고, 감리교 신자가 되었다. <계속>

 

김남식박사(한국장로교역사학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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