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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식 박사의 한국장로교 통사(通史) 9

[ 2012-11-21 13:46:02]

 

2. 한국 선교의 준비

 

외국 열강들이 '은자의 나라' 조선에 대하여 개항을 요구하였고, 특히 일본은 무력을 앞세워 그들의 요구를 관철하려고 하였다. 10년간 섭정을 하던 대원군이 물러나고 1874년에 고종이 친정(親政)을 하게 되자 명성황후 일파가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명성황후 일파는 청국과 유대관계를 맺기 원하였고, 박영효, 김옥균, 홍영식 등은 일본의 힘을 빌어 나라를 개혁하려고 하였다.

1882년에 군대제도의 개편과 그들의 대우에 불만을 가진 군인들이 임오군란(壬午軍亂)을 일으키자, 대원군 세력과 명성황후 세력 사이의 각축전이 노골화 되었다.

외세에 대하여 쇄국정책을 고수하던 조선은 1876년에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하므로 여러 열강들과도 계속하여 조약을 체결하였다(1882년에 한미통상조약을, 1886년에는 프랑스와 우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 프랑스와의 조약문 제9조 2항에 '학습혹교회어문문자'(學習或敎誨語文文字)라는 말이 있었다. 이것은 천주교의 박해 등으로 많은 수난을 당한 프랑스가 조선의 외교 경험이 미숙한 것을 계기로 선교의 자유를 얻기 위하여 애매한 표현으로 이 문제를 다루고 넘어간 것이다. 이 일에 대하여 국사학자 이선근(李宣根) 박사는 <한국사>(韓國史․最近世편, p.772)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 점에 관해서 웃지 못할 실례를 제시하면, 처음에 조선 정부는 미국 선교사들의 학교 경영을 묵인하다가 서기 1888년에 이르러서는 조약 명문이 없다는 이유로 미국 공사에게 통고하되 '한미조약에는 각종 학교를 개설하여 종교의 선포를 허락한 조문이 없다.' 따라서 정부는 '우리 국민에게 종교의 전도를 허락할 수 없으니 귀 국민에게 고하여 차 규범을 준수토록 해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미국측은 '한불조약의 규정한 바로 미루어 포교할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게 되니, 조선정부는 비로소 조문의 해석 여하를 가지고 불국 정부에 항의를 제기하였다. 그러나 불국측은 '교회'(敎誨)라는 두 자를 내세워 조문 해석상 포교의 권이 있음을 끝끝내 주장하자 조선정부도 할 수 없이 인정하고 말았다. 따라서 결국에는 미국과 기타의 제국은 불국과 동등으로 선교사업을 위한 교육기관을 경영할 수 있게 되니, 한불조약의 '교회' 두 자는 실로 이 나라의 선교사업을 통한 교육문화에 신 국면을 타개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선근 박사가 기술한 바와 같이 한국 선교는 조약문에 나오는 󰡐교회󰡑라는 두 글자로 공인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개화파의 지도자였던 김옥균의 주선과 일본에 주재하고 있던 감리교 선교사 맥클레이의 노력에 의해 고종 황제로부터 기독교의 병원과 학교 경영의 윤허를 받은 일이다.

1884년 6월 26일 로버트 맥클레이(Robert S. Maclay) 선교사가 조선을 방문하였다. 그는 기독교 선교사로서 일시적이나마 서울을 방문한 첫 번째 인물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친교를 맺은 바 있는 승정원 승지로서 외무아문교섭 사무를 맡아 보던 김옥균의 주선으로 고종 황제로부터 기독교 학교와 병원 설립의 윤허를 받았다.

그러나 이 허락은 조정의 공식 결의에 의하여 되어진 것이라기보다 고종의 개인적 허락이라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1889년 9월에 언더우드 선교사와 헤론 의사가 서울에 학교를 세우겠다고 하는 것에 대해 조선 정부가 허락하지 않은 것을 보아 알 수 있는 일이다.

일본에서 이수정이 한국 선교의 필요성을 호소하였고,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은 일본에 주재하는 선교사들에게 한국 선교의 필요성을 자극하게 되었다. 이들은 선교본부에 한국 선교를 호소하는 서신들을 보냈다.

또 중국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들도 선교본부에 한국 선교의 시급성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들은 학교의 설립, 병원 개설 등 다각적인 선교방안을 제시하였고 빠른 시일 안에 이 일이 이루어지기를 호소하였다. 일본 주재의 장로교 선교사인 조지 낙스(George W. Knox) 목사와 중국에 주재하는 장로교 선교사인 길버트 리드(Gilbert Reid) 목사가 이러한 호소에 앞장 서게 되었다. <계속>

 

김남식박사

(한국장로교역사학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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