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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선교 100주년, 이대영 사역지를 찾아

[ 2012-05-01 09:49:45]

 

폐허 속의 2층 벽돌건물 남아있어 / 복원과 사역연구가 시급한 실정

33년간 선교사역에 대한 조명 필요 / 한국교회와 유족들의 관심을 모아야

 ■길을 떠나며

여행이란,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떠났다가 그리움과 아쉬움으로 돌아오는 것이리라. 누구의 마중도 없는 길에는 외로움이 채색된 자유로움이 깔려 있다.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달려가는 마음은 허공을 향해 나래를 펴는 새들의 꿈이기도 하고 내일을 계획하는 지표이기도 하다.

인천공항을 떠난 지 1시간20분. 비행기는 중국 칭다오 공항에 내렸다. 여러 번 다녀 본 길이지만 이번의 행로는 그 의미가 달랐다. 과거로 향한 탐색이며 여기서 얻어지는 역사의 파편은 우리를 새롭게 한다.

 ■산동선교 100주년

2012년은 역사적 해이다. 1912년에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조직되고, 그 기념으로 중국 산동성에 선교사를 파송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이 시기를 단순히 보내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흔적을 더듬어 보는 의미있는 나그네 길이다.

1884년 알렌이 의료선교사로 이 땅에 처음 들어왔고, 1885년에는 언더우드와 아펜셀러가 입국하였다. 그후 많은 선교사들이 들어와 복음선포에 헌신하였다.

1901년에 평양장로회신학교가 설립되고, 1907년에 대부흥운동과 독노회가 조직된다. 최초로 한국인 목사 7명을 장립한다. 이때의 교세는 목사 17명, 장로 36명, 예배처 984개처, 세례교인 18,964명, 원입교인 21,482명이었다. 7명의 목사 중 이기풍목사를 제주도 선교사로 파송한다.

5년 후인 1912년에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조직된다. 이때의 교세는 목사 128명, 장로 228명, 세례교인 53,008명, 교인총수 127,228명이었다. 첫 총회에서 중국 산동성에 3명의 선교사(박태로, 사병순, 김영훈)를 파송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을 중국 산동성 내양에 파송하여 외국 선교를 시작하였다. 중국 산동성 선교는 미국 북장로교회, 영국 미국 침례교회가 주축이 되어 사역하였다.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는 산동성의 3분의 1 이상을, 미국 침례교회는 5분의 1을 감당하였고, 나머지를 영국침례회와 스웨덴 침례회, 공리회(감리회)가 맡아 사역하였다.

이런 여건 속에서 한국 선교사들은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훗날 산동성에 한국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설립된 래이양노회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 산하 지역 일부를 이양받아 발전시킨 결과이다.

한국장로교회의 선교구역은 지묵현, 초원현, 팽도현, 루하현, 해향현 등 모두 6현이었고, 인구는 약 380만 명이었다. 한국 장로교회가 왜 산동성을 선교구역으로 선택하였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첫째, 산동성은 공자와 맹자의 출생지로서 중국 문명의 발상지이며, 유교 문화의 본산이었다. 여기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려 하였다. 둘째,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가 큰 어려움을 겪던 지역이었는데 한국 장로교회가 자원하여 이 지역 선교를 맡았다. 셋째, 한국교회는 공자와 맹자의 고향에서 사역하는 데 대해 역사적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선교 사역의 역사는 이제 1세기가 되었다. 이들의 자취를 살피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헌신한 선교사들

1912년의 제1회 총회에서 중국 선교를 결의하고 5기에 걸쳐 선교사를 파송하였는데 그 면모는 다음과 같다.

①제1기 : 박태로(황해노회, 1913-1916.4, 1917.5), 김영훈(평북노회, 1913.11-1917.4), 사병순(평남노회, 1913.11-1917.4) 선교사가 내양을 중심으로 사역하였다.

②제2기 : 방효원(평북노회, 1917.5-1935.10)- 내양에서 사역. 홍승환(경북노회, 1917.10-1924)- 지묵에서 사역.

③제3기 : 박상순(평남노회, 1918.11-1940)- 내양에서 사역.

④제4기 : 이대영(경안노회, 1922-1955)- 지묵에서 사역.

⑤제5기 : 김순호(여전도회, 1931.9-1939.9)- 내양에서 사역. 방지일(평양노회, 1937-1957)- 청도와 내양에서 사역.

산동성 선교의 역사는 이렇게 계승되었다. 방지일목사가 중국의 공산화로 인하여 철수할 때까지 그곳은 우리 한국교회의 선교 구역이었다.

 ■잊혀진 선교지들

칭다오 공항에서 지묵으로 향했다. 거리 표시판에는 20km라고 나와 있으나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길이다.

지묵은 홍승환, 이대영 선교사가 사역한 중심지로서 한국교회의 선교역사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곳이다. 지묵의 특성을 찾기 전에 우리가 탐구하는 이대영 선교사에 대해 알아보자.

이대영은 경남 울산에서 출생하였다. 경북 예천이 고향인데 왜 울산에서 태어났을까? 정확한 해답이 없다. 지금까지 나온 모든 책에는 󰡒이대영은 1887년 4월 23일 경상북도 예천군 금당실에서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경북 예천에 있는 이대영의 묘지 비석에는 󰡒경남 울산 출생󰡓이라고 되어 있다(필자의 추정으로는 모친의 친정이 울산이어서 친정에 가서 해산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 더 추적해야 할 부분이다).

그후 고향 예천에서 성장하였고, 불신가정에서 핍박 가운데 예수를 믿고 전도자로 헌신하였다. 1920년 12월 평양장로회신학교 14회로 졸업하고, 1921년 1월 경북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안동읍교회 위임목사로 청빙을 받는다.

1922년 경안노회가 경북노회에서 분립할 때 이대영은 노회 서기가 되었다. 그 전 해인 1921년 9월 10-15일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모인 제10회 총회에서 이대영을 중국 선교사로 임명하였다.

이대영은 안동읍교회에서 1년반 정도 시무하다가 선교사로 가게 되어 1922년 6월 13일 중국 산동성 내양에 도착하였다.

이대영의 선교비는 평북노회 여전도회에서 감당하였다. 10개월간 내양에서 어학 공부를 한 후 남쪽으로 32km 떨어진 즉묵으로 선교지를 옮겼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현지 중국노회에 가입하고 지방교회들을 돌보았다. 1924년 9월에 모인 제14회 총회에서는 중국 산동성 선교사 철수 문제로 장시간 논란을 하였다. 홍승환 선교사는 철수하고 이대영은 계속하여 사역하였다.

 ■이대영의 사역들

이대영은 한국교회의 모금으로 즉묵예배당-선도당(宣道堂)을 건립하고 1927년 8월에 준공하였다. 즉묵을 중심으로 주변의 8개 교회를 돌보았는데 즉묵성, 궁가장, 박자, 오산위, 대인관, 지방교회들이었다.

즉묵예배당(선도당) 건립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헌금했는데 즉묵에서 삼일의원을 개업하고 있던 주현측장로가 2백원을 헌금하는 등 아름다운 헌신을 하였다.

중국의 내전과 세계2차대전으로 선교사들은 많은 고초를 겪었다. 이대영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전쟁이 끝나자 청도에서 한국교민회를 조직하고 이대영이 회장을 맡았다.

이대영은 1948년 7월에 한국을 방문하여 약 10개월간 전국을 순회하며 부흥회를 인도하였다. 1949년 중국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중국이 공산화되어 그 길이 막혀 고국 사역을 감당하였다.

1955년 4월 24일 오후2시 서울영락교회에서 이대영 선교사 선교33주년 기념 및 가족환영예배가 성대히 거행되었다. 한경직목사의 사회로 승동교회 찬양대의 찬양, 이자익목사의 설교, 최재화목사의 기념사, 타마자 선교사의 축도로 드려졌다. 변영태 외무장관, 서울신학교 교장 이명직목사, 구례인 선교사의 축사가 있었다.

이대영은 승동교회 위임목사로 부임하였고 41회 총회장을 지냈으며 교단 분열의 회오리 속에 고통을 겪었고, 1968년 11월 2일 81세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폐허 속의 유적지

이대영의 사역지를 찾기 위해 즉묵을 헤맸다. 중국교회의 여자 목사의 안내로 시장 골목을 지나 역사의 현장을 보았다. 붉은 2층 벽돌 건물은 아직도 뼈대가 남았으나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실정이었다.

이곳을 복원하여 선교센터로 삼아야 하고 이대영의 사역을 바로 조명해야 한다. 33년간 사역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사라져가고 있다. 심지어 예장합동 총회가 발간한 이른바 「100년사」에 이대영의 선교사역 기간을 1922-1948년으로 기록하였다(2권, 654면). 분명히 제40회 총회록 321-322면에는 '선교 33주년 기념예배'가 나와 있다(1955년). 이건 역사의 왜곡인지 무지의 소치인지 알 수 없다.

그에 대한 연구와 유적지 복구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괴로운 발걸음을 돌렸다.

- 중국 칭타오에서 김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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